‘순백의 신비’ 자작나무 숲의 마법에 ‘마음은 평화’(한국아파트신문)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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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사 작성일25-06-09 09:16 조회3,636회 댓글0건본문
‘순백의 신비’ 자작나무 숲의 마법에 ‘마음은 평화’
- 이성영
[테마여행] 운탄고도 1330
강원도 정선·사북을 지나 정암사가 있는 계곡 길을 오르는데 만항재가 가까워질수록 계절은 거꾸로 간다. 겨우내 잠들었던 자연이 깨어나 신록이 절정을 이루는 5월이지만 이곳은 높은 고도로 인해 이제야 연둣빛 새싹과 봄의 야생화가 한창이다.
얼레지의 진분홍 화사한 꽃망울이 수줍게 살며시 고개를 들면 앙증맞은 연두색 산괭이눈은 낮은 자세로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다양한 색깔의 현호색과 한계령풀의 노란 자태가 연초록의 숲을 물들이고 홀아비바람꽃 하얀 꽃대가 청초한 숲에서 외롭지 않다.

사계절 내내 눈 호강하는 ‘천상의 화원’
얼마 전 운탄고도 3길과 연결되는 해발 800m 영월 망경산사의 뜰에서 뒤늦게 봄을 찾았다. 그간 만나지 못한 야생화들이 이제야 제철을 맞았나 보다. 이곳에서 가슴 설레도록 눈이 호강이다. 태백산과 함백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높은 고도 덕분에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하는 만항재 인근의 야생화 공원. 이곳은 ‘천상의 화원’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고산 식물과 야생화가 피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늦은목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고개의 정점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의미로 한자어로 만항재(晩項峙)로 표기됐다. 화절령, 도롱이 연못, 고원숲길, 마천봉의 구릉을 지나 만나는 정선과 영월의 운탄고도 5길의 마지막 구간이다. 태백으로 향하는 6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만항재에서 태백의 경계점을 향해 함백산 입구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숲속을 가득 메운 노랑 산괴불주머니가 차도 옆까지 자리를 차지하며 그 자태를 뽐낸다.

함백산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 있는 정암사와 금대봉·은대봉 등 오랜 불교 유산의 숨결이 서려 있다. 소박한 민간 신앙의 발자취와 더불어 산업화 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독특한 산이다. 보존의 가치가 커 태백산 국립공원으로 늦게나마 편입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태백선수촌과 오투전망대를 지나 지지리골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운탄고도로 접어든다. 운탄고도에서 철쭉이 피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자작나무 숲을 만난다. 1990년대 폐광 후 산림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자작나무를 심어 도시숲이 조성됐다. 함태탄광 갱도의 아픔과 현재의 환경 복원 노력이 뒤섞였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지지리골의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산길의 끝에서 갑자기 시야가 환해진다. 햇살이 자작나무 잎들로 쏟아지니 연두색 잎들은 숲을 은은히 채색을 시작한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은 순백의 자태로 더욱 신비롭다. 빼곡하게 들어선 자작나무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멧돼지 잡아 지지리 해먹던 ‘지지리골’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문득 김용택의 시를 떠올리며 자연이 주는 위안과 평화를 느낀다. 그것은 때 묻지 않은 듯한 순수함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눈이 편안하고 마음은 평온해지니 자작나무 숲의 마법이 시작된다. 자작나무숲을 거닐다 숲길로 접어들면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오감을 달랜다. 우거진 숲 사이로 넓은 길은 쾌적한 바람의 길이다. 유채꽃을 닮은 유럽나도냉이의 노란 꽃망울이 가장자리의 숲길을 밝힌다. 나뭇잎 사이 시야로 푸른 하늘이 5월의 시간을 묶어둔다.

지지리골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옛날 사냥꾼들이 이 골짜기에서 멧돼지를 사냥한 후 현장에서 돌을 불에 달궈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지지리’라 불렀다. 그래서 멧돼지를 잡아 지지리를 자주 해 먹던 골짜기여서 지지리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골짜기에 살던 화전민들이 ‘지지리도 못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었는데 ‘지지리’라는 단어의 본래 뜻을 오해한 설명이었다고 한다.
지지리골은 태백산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태백시 소도동까지 3.5㎞ 정도의 계곡 옆으로 이뤄진 숲길이다. 운탄고도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구간 중 하나다. 하얀 자작나무 숲과 함께 과거 광산 노동자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연적 명소다. 운탄고도 6길은 지지리골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태백 상장동 벽화마을을 지나 연화산으로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우측 맨발길로 이뤄진 소도천옆의 숲길은 태백산국립공원으로 가는 탄탄대로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운탄고도는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길을 복원해 조성됐다.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를 지나는 구간이 많아 구름 위의 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운탄고도·1330’은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잇는 장거리 걷기 길이다. ‘1330’이라는 숫자는 운탄고도의 최고 고지인 만항재의 해발고도 1330m에서 따온 것이다.

높은 길 만항재서 ‘살아있는 자연’ 만나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해 삼척 소망의 탑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173.2㎞의 길로 남녀노소 누구라도 일부 구간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높은 길에서 만나는 자연의 살아있는 모습과 복원의 과정, 탄광의 흔적도 마주할 수 있는 아카이브다.
중국의 윈난성에는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는 오래된 길이 있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다.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험준하고 가파른 길이다. 오랜 두 길에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이성영
이성영 여행객원기자 ㈜한국숲정원 이사. 산림교육전문가
기사원문 출처 : www.hap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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